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진저티프로젝트 서현선입니다.
오늘은 제 개인적인 소식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 글을 써 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서일까요? 오늘은 유난히 많은 분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진저티를 시작한 후, 저는 꽤 많은 분들과 만나고 연결되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분들, 워크숍을 통해 만난 분들, 책과 연구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 분들.
함께 작당 모의를 했던 파트너들, 사무실을 함께 썼던 친구 같은 조직들, 가족처럼 의지했던 동료들. 진저티를 통해서 참 많은 분들을 만났고 대화했고 좋은 일들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2014년 4월 3일에 진저티프로젝트의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된 이후 벌써 8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곡차곡 진저티에, 아니 저에게 만남과 사업과 지식과 경험들이 쌓였습니다.
이제, 진저티프로젝트를 졸업합니다.
이 뉴스레터를 열어보게 되실 6월 30일은 제가 진저티프로젝트를 졸업하는 날입니다.
사실 졸업이라는 표현은 일터에서 흔히 쓰이는 말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퇴사'라는 말이 왠지 껄끄럽고 적절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졸업'이라는 단어를 굳이 빌려와 봅니다. 마지막 근무일을 하루 남겨놓은 오늘(6월 29일) 저는 망원동 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제 삶의 중요한 일부였고, 때로는 전부같았던 진저티프로젝트를 내일이면 졸업한다는 것이 사실 저에게도 전혀 실감나지 않습니다. 진저티를 졸업하는 제 감정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이전의 퇴사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질감과 색감을 느끼게 합니다.
제가 진저티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 같아 가벼워지기도 하고, 진저티가 나에게서 떠나 독립을 한 것 같기도 해서 조금 쓸쓸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지나온 모든 것이 다 고맙기도 하고, 괜스레 동료들에게 미안하기도 한 마음입니다.
8년의 시간이 저에게 남긴 것들
'진저티라는 실험을 2년 동안만 할게요'라고 말했던 8년 전의 제 다짐이 무색하게, 저는 8년이 넘는 시간을 진저티로 활동했습니다. 셀 수도 없이 '언제도 망해도 되는 회사, 진저티프로젝트'라고 소개했지만 지난 8년 동안의 저 자신을 돌아보니 이 조직을 절대 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온갖 노력을 다한 것 같습니다. 저는 자유와 선택을 좋아한다고 믿고 살았었는데, 진저티프로젝트에서 지내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제가 책임과 성실도 무척이나 소중하게 믿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재무에 밝지 않고 현실적이기보단 이상적이라고 제 자신을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진저티프로젝트의 한 달 한 달의 수입과 지출을 머릿속에 그리며 계산하며 살고 있는 제 모습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지난 8년을 돌아보면 진저티프로젝트라는 조직에 의해서 제 자신이 새롭게 발견되고 성장하고 변화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진저티프로젝트가 만들어지는데 제 역할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제가 형성되는데 진저티프로젝트가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직은 다 알지 못하지만, 어느새 몸에 밴
진저티프로젝트에서는 누군가 퇴사를 결정하게 되면, 퇴사자 인터뷰라는 형식의 대화를 합니다. 그 퇴사 인터뷰 질문들 중 “진저티프로젝트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가장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영역과 역량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있는데 오늘 문득 그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져보았습니다. 사실 그 퇴사 인터뷰 질문들을 만든 사람도, 그동안 퇴사자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도 저였기 때문에 친숙한 질문임에도 그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니 왠지 묵직하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진저티에서의 시간을 통해 저에게는 어떤 역량이 남았는지 아직은 답변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언가 남지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축적된 묵직하고 깊숙한 어떤 것이 있다고 느껴지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세상을 보는 관점, 누군가와 관계 맺는 방식, 나 자신을 성찰하는 습관, 외부의 시그널을 읽는 감각,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일하는 근육. 진저티에서의 시간이 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 아직 다 정리되지 않네요. 졸업 이후에는 진저티가 나에게 남긴 것이 무언인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길을 나서는 마음, 그러나 이어지고 싶은 마음
요즘 매일같이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선님 뭐하실 거에요? 무슨 계획이 있으세요?” 사실 뚜렷이 해보고 싶은 일도 향후 계획도 저에겐 아직 없습니다. 왠지 지금이 진저티에서 나와 새로운 한 발을 뗄 시간이라는 모호한 감각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 아직 모르지만, 용기를 내어 길을 나서면 반드시 가야 할 여정으로 인도될 거라는,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평안함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진저티를 졸업하고 새로운 길로 한 걸음을 내딛지만, 진저티에서의 소중한 만남, 경험, 지식들과 이 길이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 바람일지도 모르겠네요. 끊어지기에는 제가 진저티를 너무 좋아하니까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진저티에서 활동하는 동안 너무나 많은 분들께 도움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기회를 선물해주셨던 분들도, 신뢰와 지지라는 에너지를 주셨던 분도, 우정과 환대를 서로 주고받은 분들도 계셨습니다. 졸업을 하는 시점이 되니 진저티를 통해 만났던 그 만남과 관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진저티라는 조직이, 서현선이라는 사람이, 용기를 내어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자신의 역할을 해 낼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부터 도움과 선의를 받았는지를 절실히 깨닫습니다. 한 분 한 분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그리고 또한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진저티가 앞으로 가야할 길 역시 여러분과 만나고 연결되고 도움과 우정을 주고받는 여정이 될 것을 알기에 진심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진저티의 창업멤버로서, 전 공동대표로서, 주주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여러분과 진저티가 좋은 관계로 성장해가길 기대합니다.
저 역시 앞으로도 진저티 구성원들과 우정을 주고 받으며 새 길을 잘 개척해보겠습니다.
진저티프로젝트도, 저도 좋은 모습으로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창업멤버이자 (전) 공동대표였던 제가 진저티를 졸업하게 되면서, 진저티는 내부의 리더십과 거버넌스를 조금 더 단단하고 유연하게 전환하기 위한 여러 고민을 했어요. 진지하고 깊은 논의들을 통해 2022년 7월부터는 진저티 원년멤버이신 홍주은님이 다시 공동대표로 합류해 주시고 강진향님은 공동대표가 아닌 이사로 활동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진저티답게 조직문화와 리더십을 가꾸어가며 여러분께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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